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르코의 복음서 (문단 편집) === 16장 9절 이후 내용 === 대다수 신학자가 마르코의 복음서 원본이 16장 8절에서 끝난다고 생각한다. 개역개정 성경은 9절 이후 내용을 대괄호로 묶고 이 내용이 중요한 초기 사본들에 없다고 적었다. 새번역 성경은 대괄호 두 개로 묶었는데 좀 더 강한 어조로 9절 이후 내용이 마르코의 복음서 원본은 아니지만 교회 전승에 따라 성경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만큼 중요한 내용이라는 의미이다. 많은 신자가 신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려워 한다. 이러면 마르코의 복음서가 예수님의 부활이 아닌 여자들이 무서워 하는 장면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마르코의 복음서 원본은 텅 빈 무덤만 보여주고 예수님의 부활을 확실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담기지 않으면 그게 무슨 복음서인가, 예수님 위인전이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신학을 공부하지 않았더라도 차분히 생각해보면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신뢰할 수 있는 초기 성경 필사본 가운데 일부는 16장 9절 이후 내용이 있고, 일부는 없는 상황이다. 본문비평학 학자들은 둘 중 어느 필사본이 성경 원본에 가까운지 판단해야 한다. 1. 마르코의 복음서 원본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전했지만 초기 기독교 신자들이 문헌을 훼손하는 한이 있더라도 부활 이야기를 뺐다. 2. 마르코의 복음서 원본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전하지 않았지만 초기 기독교 신자들이 문헌을 훼손하는 한이 있더라도 부활 이야기를 넣었다. 신학자들은 두 번째 상황이 이치에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성경 원본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16장 9절 이후 내용은 교회 역사에서 워낙 중요한 본문이기 때문에 성경의 다른 '없음' 구절들[* '성경 없음 구절'에 관해서는 [[성경]] 문서 참조.]처럼 삭제할 수 없다. 우리는 이 내용 역시 성경으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신약 성경의 대본인 NGT는 이 부분에 대괄호 두 개를 쳐놓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마르코 복음 16장 9절부터 20절까지의 내용을 '긴 끝맺음'이라고 부른다. 대부분 사본에 존재하나 신뢰성 높은 4세기 사본인 바티칸 사본, 시나이 사본에 이 내용이 없다. 마르코 복음 16장 1절부터 8절까지 이야기는 이렇다. [[마리아 막달레나]]와 몇 명의 [[여인]]들이 무덤을 찾아갔다가, 천사의 "[[예수]]님은 여기 안 계시니까 갈릴래아로 가서 [[베드로]]에게 부활소식을 전해라."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여자들은 겁에 질려 덜덜 떨면서 무덤 밖으로 나와 도망쳐 버렸다. 그리고 너무도 무서워서 아무에게도 말을 못하였다. 이렇게 마지막 열두 절이 없는 경우, 마르코 복음은 무척 황당하게 끝나게 된다. 이 일화가 쓰여있다는 것 자체가 결국 여인들이 누군가에게 말해주었다는 의미가 되겠지만 일단 내용상으로는 여인들이 사도들에게 부활 소식을 알리지 않은 채이고, 결국 사도들이 부활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이상한 결말이 되는 것이다. 분명 여인들의 뒷 행동 및 부활한 예수를 접한 얘기들이 따라 붙어야 기독교가 전파된 원인 및 예수를 믿는데 대한 복음의 완성이 될 텐데 이것이 없으니 이상할 수 밖에. 대부분 성서 비평학자들은 이 마지막 구절들은 후대에 가필한 부분으로 본다. 현존하는 신뢰성 높은 고대 사본들에 이 단락이 없다. 또한 이 단락에 쓰인 문체는 마르코 복음서의 나머지 부분과 확연히 다르고 연결도 부자연스럽다. 예를 들어 16장 1절에 이미 마리아 막달레나가 나왔는데 9절에서 다시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마리아 막달레나'라고 하면서 그녀를 처음 소개하는 듯한 설명을 하고 있다. 또 마르코 복음서 16장 8절 이전의 내용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단어와 문구들이 이 단락에 많이 나타나고 있다. 증거가 여럿 있기 때문에 대다수 본문비평학자들은 이 단락이 가필된 부분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이 부분을 괄호로 묶어 놓거나, 각주로 일부 고대 사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붙여놓고 있다. 가필이 맞다고 해도 추가된 시기가 그렇게 늦다고 보기는 어렵다. 2세기 초에 활동한 교부들이 쓴 그들의 저서에 마르코 복음서 16:9-20 을 인용한 부분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바티칸 사본이나 시나이 사본이 작성되었다고 알려진 4세기경보다 훨씬 이전의 기록들이다. 두 사본보다 이전 혹은 동 시기 사본에서도 마르코 복음서 16:9-20의 내용이 발견된다. 5세기에 쓰여진 알렉산드리아 사본에서도 16:9-20 의 내용들이 발견된다. 바티칸 사본에서 마르코 복음서 16:8 이후로 여백이 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바티칸 사본의 유일한 여백이다. 글자 크기를 대조한 연구에 따르면 16:9-20 이 들어가면 딱 맞을 여백 사이즈임이 확인되었다. 대표적인 비평학자인 브루스 메츠거 교수(Bruce Metzger)[* 20세기의 유명 신약학자들 중 한 명. 다년간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에 따르면 마르코의 복음서 마지막 부분은 네 종류가 있다. 1. 16:9-20 부분이 없는 사본. '짧은 끝맺음'(Shorter Ending)으로 불린다. 2. 16:9-20이 있는 사본. '긴 끝맺음'(Longer Ending)으로 불린다. 3. 16:9-20이 있으면서 현재 8,9절 사이에 딴 절이 포함된 것. 4. 16:9-20이 있으면서 현재 14,15절 사이에 딴 절이 포함된 것. 1번을 뒷받침하는 사본들은 바티칸 사본, 시나이 사본 외에도 시나이-쉬리아 사본, 약 100개의 아르메니아 사본들, 9-10세기의 그루지야 사본들 중 가장 오랜 2개 등이 있다. 9-20절이 포함된 '긴 끝맺음' 사본들은 5세기에 쓰여진 알렉산드리아 사본 외에 매우 많다. 그리스어 사본의 대부분, 바티칸 사본과 비슷한 시기에 작성된 고트어 사본, 5세기 대문자 사본인 에프라임사본, 워싱턴사본, 6세기 베자-케임브리지 사본, 파리사본, 뮌헨사본, 갈렌(=갈루스)사본, 티플리스사본(그루지아), 레닌그라드사본 등이다. 주요 사본들외에도 부분적으로 다른 절을 더 추가한 사본들도 상당수 된다. 9,10세기의 4개 주요사본들, '패밀리 13'의 10여 소문자 사본들도 그렇다. 비율로 치면 2-4번인 경우가 1번인 경우보다 훨씬 많다.[* 후자를 지지하는 필사본의 수가 더 많지만 본문비평학자들이 전자가 맞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본문비평학에서 필사본의 갯수보다는 어느 것이 더 초기의 필사본인가, 이문이 적은 믿을 수 있는 필사본인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 사본은 8절 이후에 긴 끝맺음 대신 "짧은 끝맺음"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짧은 끝맺음은 '그 여자들은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에게 가서 그들이 들은 모든 것을 간추려 이야기해 주었다. 그 뒤 [[예수]]께서는 친히 제자들을 해가 뜨는 곳에서 해가 지는 곳까지 보내시어 영원한 구원을 선포하는 거룩한 불멸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 [[아멘]]'[* [[공동번역 성서]]의 번역. [[2005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낸 성경에서는 "그 여자들은 자기들에게 분부하신 모든 것을 베드로와 그 동료들에게 간추려서 이야기해 주었다. 그 뒤에 [[예수]]님께서도 친히 그들을 통하여 동쪽에서 서쪽에 이르기까지, 영원한 구원을 선포하는 거룩한 불멸의 말씀이 두루 퍼져나가게 하셨다. [[아멘]]"으로 번역한다. 개역성경이나 일부 천주교 성경에는 "짧은 끝맺음"의 번역이 실려있지 않다.]이다. 갑자기 끝나는 느낌이므로 다양한 의견이 있다. 1.마르코가 일부러 8절에서 끝냈고, 후대의 사람이 이상하다고 여겨서 가필했다.[* 김용옥은 저자 마르코가 역사적 사실인 예수의 죽음과 죽음 이후의 일을 취재한 뒤 그리스 비극의 형태를 이용하여 드라이하지만 깔끔하게 마무리 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2.마르코가 8절에서 끝내려고 하지 않았지만 다 마치지 못하고 죽었고[* 저자가 복음서를 완성하기 전 모종의 이유로 죽었을 가능성, 초기 교회는 탄압이 심해서 복음서를 완성하기 전 순교했을 수 있다.] 뒤의 사람이 완성하였다. 3.원래의 결말이 있었는데, 탄압 및 전승과정 중 유실되었다. 2와 3은 원저자의 의도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공통점이 있으므로 논쟁은 8절로 끝낸 것이 의도적이었나 아니었나에 집중되는 편이다. 마르코 복음서는 16장 이전에 자신이 붙잡혀 죽은지 사흘만에 부활할 것이라는 생전 예수의 말이 지속적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당시 복음서 저자가 예수의 부활을 믿고 있었음을 반증하며, 그렇기에 저자가 쓰는 글 또한 그러한 예수의 행적으로 끝을 맺어야 하기 때문에 8절에서 끝내는 것은 원저자의 의도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마르코 복음서는 예수의 행적과 어록, 기적들을 중점적으로 쓴 전도서이지 무미건조한 역사서가 아니다. 비극이나 열린 결말을 추구하는 문학 작품은 더더욱 아니다. 8절 이후 짧은 끝맺음을 남긴 버전은 긴 끝맺음보다도 후대의 가필임이 확실시되며, 아예 주석에서 생략되기도 할 정도이다. 짧은 끝맺음의 내용 자체가 16장 8절과 모순되고 복음서의 전반적인 경향과 이질적인 것으로 여겨지며, 긴 끝맺음은 없고 짧은 끝맺음만 있는 라틴 사본이 단 하나밖에 없고 여러모로 예외적이다. [[분류:마르코의 복음서]] [[분류:신약성경]]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